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웨덴/역사/바사 왕조 (문단 편집) ======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본격적인 참전 ====== 이제 오히려 위기에 몰린 칼 10세 구스타브는 AD 1656년 6월 29일 사실상 지켜내기 어렵게 된 대(大) 폴란드 지방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에게 양도하고 대(大) 폴란드 지방에 대한 종주권도 행사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마리엔부르크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대(大) 폴란드 지방의 수비병이 브란덴부르크군으로 대체되면서 칼 10세 구스타브가 병력 운용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7월 28일 브란덴부르크군과 연합한 스웨덴군 18,000명이 폴란드 군 40,000명을 물리치고 7월 30일 바르샤바를 다시 탈환하였다. 하지만 폴란드 군이 병력을 재편하여 바르샤바 탈환을 노렸고 그 사이 바르샤바가 많이 파괴되어 방어에 적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바르샤바를 포기하고 프로이센으로 철수했다. 리투아니아의 야전 헤트만 빈첸티 코르빈 고시에브스키가 타타르족의 지원을 받아 프로이센 공국으로 진격하여 AD 1656년 10월 8일 '프로스트키 전투'에서 브란덴부르크-스웨덴 연합군에게 승리를 거두고 일전에 케다이네이 협정을 통해서 리투아니아를 스웨덴에게 넘기는 데 일조했던 보구스와프 라지비우를 포로로 붙잡았다. 그러나 이후 [[크림 타타르]]족이 철수하면서 10월 22일 벌어진 '필리푸브 전투'에서는 패배하면서 리투아니아로 철수했고 보구스와프 라지비우는 다시 풀려났다. 그 사이 대(大) 폴란드 지방을 회복하고 있던 폴란드군이 이제는 프로이센 공국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대(大) 폴란드 지방을 지키던 브란덴부르크군이 모두 프로이센 공국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더욱이 오랫동안 지속된 스웨덴군의 단치히 포위전도 최종적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제 칼 10세 구스타브가 차지하고 있는 폴란드 점령지는 폴란드 왕령 프로이센의 절반, 마조프셰의 북부 지역, 워비치, 크라쿠프, 티코친 뿐이었다. 이에 칼 10세 구스타브는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적극적인 전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11월 20일 '라비아우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를 통해 프로이센 공국에 대한 종주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폴란드 왕령 프로이센 중 프로이센 공국 사이에 끼어 있던 에름란트에 대한 소유권도 넘기기로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